Landscape/fall

[스크랩] 흰 양이 화경을 훔쳤어요.

Space & Interval [0,1] 2009. 6. 15. 16:23







늦가을 쌍계루 물빛에 눈 멀면


명부전도 다홍 물살에서 헤어나지 못한다


 


물에 비친 제 얼굴을 사랑하다 사랑하다


나르시소스, 혹은 단풍잎은


몸을 던졌는데


문득 수면에 뜬 제 나뭇가지에


도로 얹혔다 목숨들은


늘 배고픈 것단풍나무 그림자가


피단풍 낙엽를 물고 있는


붉디붉은 法文 한 장이 출렁인다 


죽었다 깨어나도


깨달음은 저쪽에 있는


단풍 한 장의 허기여




 

대웅전에서 맨발로 뛰어나온 부처가 


제머리를 찧어 마당을 쓰는가


가랑잎 구르는 너른 뜰


문득 갈 빛인 내 그림자 본다


바람에 쓸려가는 낙엽 하나


집어드는데


절간 뒤에 귀 열고 섰던 백암산이


갑자기 허리를 폈다


華經을 훔쳐 승천한


흰 양이 너였구나









출처 : 운문에 구름 걷히면
글쓴이 : 이성수 원글보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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